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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호 초대사진전 <세잔의 앵무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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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호 초대사진전 
<세잔의 앵무새>


2021년 5월 1일(토)~30일(일)
10:00~17:00 월 휴관


작은창큰풍경갤러리
대전시 동구 대전천동로 580
042ㅡ223ㅡ8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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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세잔의 앵무새
(Paul Cézanne's Parrot)



1990년 네팔 팔파탄센, 내 나이 29살 때 히말라야산맥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던 날이 있었다. 9월 어느 날, 렌터카 뒷좌석에서 우연히! 두터운 구름 속에서 봉우리 윗부분만 빼꼼 내민, 나중에 알게 된 그 이름 마차푸차레였다. 6997m의 미답봉, 등반이 절대 금지된 신성한 산봉우리.... 
그 마차푸차레를 제대로 보려고 포카라 사랑곳과 팔파탄센을 찾아갔다. 사랑곳에서는 아침부터 오후 해질녘까지 희뿌연 구름만 바라보며 그 뒤에 있을 마차푸차레를 상상하다가 내려왔다.  포카라에서 7-8시간 거리 팔파탄센에서의 그 날 새벽, 마차푸차레보다도 더 높은, 일일이 이름을 다 알 수 없는 수 백km 이어지는 거대한 설산들이 구름을 뚫고 간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경이로움! ‘창백한 푸른 점’을 처음 보았을 때만큼이나 소름이 돋았다. 


나는 주저 없이 촬영하기 시작했다. 24*36mm 필름에 약탈하듯 여기저기를 잘라 담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울컥! 카메라를 땅바닥에 내려놓고 주저앉았다. 며칠 전 목격했던 카트만두 외곽 파슈파티나트 사원 앞 화장터, 장작더미 세찬 불길 속 한 삶의 완전한 끝이 오버랩 되었던 것이다. 


‘창백한 푸른 점’ 속의 창해일속(滄海一粟), 그 한 톨 좁쌀보다도 더 잘게 쪼개지는 왜소한 존재를 느끼던 그 날 아침.... 몇 시간을 쪼그리고 앉아 눈물 똑 떨어뜨리며 내 삶을 생각했다. 


이토록 왜소한데 과연 실패라는 게 있을까.... 정직, 비 유학, 작가의 삶 - 세 가지 결심을 했다! 


作家! 허나 나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던 재능, 그리고 27살 군 제대 후 갈피를 잡지 못하고 끝내는 싸늘하게 식어버린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한 관심....
무엇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뒷받침 되지 않은 결의는 아무 소용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것이 강박으로 작동하여 마음을 더욱 옥죄었다. 태생적 나약함에 더해진 막막함은 아무리 의지를 다지려 해도 곧바로 실천에 이르게 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1992년 첫 個人展, 표현 열망보다는 어떻게든 좀 더 살아야겠다는 발버둥이었다. 그 막막한 미로 속에서 연이은 두 건의 교통사고, 둘째누나의 치명적 암 발병으로 인한 침울한 집안 분위기 그리고 아버지 사업을 계승하지 않고, 돈을 위해 사진 찍지 않겠다는 작가 지망생의 치기.... 현실은 단지 흰손 휘날리는 일상을 초래했을 뿐이다. 극도의 무력감을 동반한 채.... 


당시 넋두리 가득 듬성듬성 일기(日記)에 ‘세잔의 앵무새’, 여섯 글자가 세 번 등장한다. 1991년 11월 28일, 12월 10일, 12월 28일. 그러나 그 세 번은 단순 반복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이듬해 첫 개인전, 변변한 단체전 참가 한 번 없이 감행한 무작정 개인전을 앞에 두고, 자율적 삶 작가 데뷔를 앞두고 스스로를 격려하며 담금질하던 용어였다. 이후 나의 책 수집벽과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오려 모은 신문 스크랩 - 100가지가 넘는 테마의 A3 파일 200여 권과 20기가 분량 디지털 파일 등이 나의 앵무새가 되었다. 각인(刻印), 확인(確認), 잊은 적이 없다. 낙인(烙印)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세잔의 앵무새.’ 


이제 13번째 개인전을 연다. 회고전 아닌 회고전일 듯싶다. 첫 개인전 <아노미>와 두 번째 개인전 <노이로제>로 타나토스의 평안 유혹을 물리치며, 11년 동안 여섯 번의 개인전을 복사기로 작업했다. 이른바 제록스 아트 혹은 카피 아트.  


굴곡 있는 신체, 내 몸이 복사기 유리판에 강하게 밀착되어 디테일 없이 하얗게 묘사된 부분, 부분들을 보면 지금도 마음이 아리다. 현실 부적응자의 현실 적응 노력... 무엇인가 말하고 싶은 것을 애써 참는 저 옥다문 입!


40대 중반에 시작하여 50대 중반에 작업을 마친 작업, <내가 저 달을 움직였다!> 연작들.... 작업에서나마 자유를 느끼고 싶은 욕망!
30년이 지났다. 왜소하니 실패라는 건 없다는 생각은 아직 유효한가? 그렇다! 이게 29살 靑年의 질문에 59살 長年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응답이다. 


아무튼 잘 견뎌 왔다. 부족한 재능을 앵무새들로 채워 왔다. 신산(辛酸) 했던 삶을 작업으로 지나왔다. 
모난 돌 곁에서 묵묵히 지켜봐 준 ‘당신들’ 덕에 나름 ‘럭키’한 세월이었음을 느낀다. 정말 감사하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는 작가의 속성, 
지금 나는 내 어깨를 내가 두드리는 것으로 격려하고자 한다. 


ㅡ2021.5. 박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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